'왕과 사는 남자', 미술계까지 뒤흔들었다

2026-04-14 14:45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촉발한 단종 열풍이 스크린을 넘어 미술계로 번지고 있다. 한국 구상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서용선 화백이 40년간 몰두해 온 단종 연작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대규모 연합 전시 '서용선의 단종그림' 전이 개최된다.

 

서 화백이 단종이라는 역사적 인물에 깊이 빠져든 것은 1986년 여름, 영월 청령포에서의 신비로운 경험 때문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충신 엄흥도의 환영을 보았고, 이는 돌아가신 부친의 모습과 겹쳐지며 예술가로서의 운명적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한국사의 비극이 세계적인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순간이었다.

 


그의 작품은 승자의 기록으로 남은 역사를 넘어, 그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감정을 파고든다. 계유정난의 피바람 속에서 공포에 질린 신하들, 유배지에서 홀로 고독을 감내해야 했던 어린 왕, 그리고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의 결기까지, 역사의 행간에 묻힌 감정들이 화폭 위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서용선 화백 특유의 거칠고 강렬한 필치와 핏빛처럼 선명한 원색의 사용은 이러한 감정을 극대화한다. 일그러진 인물의 형태와 파격적인 색감은 수백 년 전 인물들이 겪었을 극한의 고통과 고뇌를 관람객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며,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번 연합 전시는 오는 20일 영월관광센터를 시작으로, 서울에 위치한 갤러리 4곳에서 릴레이 방식으로 이어진다. 특히 영월 전시 기간에는 지역의 전통 축제인 단종문화제가 함께 열려, 역사의 현장에서 현대미술과 전통 제의가 어우러지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전시와 더불어 작가와 함께 영월의 역사적 장소를 직접 답사하는 워크숍이 마련되고, 200여 점에 달하는 단종 관련 작품을 집대성한 단행본도 출간된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그림 감상을 넘어, 시대를 초월한 비극적 서사를 '읽어내는' 기회가 될 것이다.